7/08/2020

시칠리아 여행: 12: 피아짜 아르메리나: 로베르토



빌라에서 엄청 여유를 부렸는데도 시간은 두 시가 조금 넘었다. 버스를 타자고 4시 20분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아침에 확인한 택시 번호로 전화를 했다. 빌라로 와달라고 부탁하니, 15분쯤 걸리는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지금 15분 기다리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 거야? 1시간도 괜찮다고 할 판이고 15분쯤이야 시칠리아 기준으로는 순간인데? 당연하지!!! 내가 시칠리아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알 리가 없지.^^


[피아짜 아르메리나 빌라 로마나 앞 피끼딘디아]

전화를 끊고 근처에 있는 피끼딘디아가 너무 예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몇 장 찍기도 전에 차 한 대가 와서 선다. 내가 부른 차가 맞나 확인하려 다가가니, 기사가 내리며 이름을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로베르토. 단정한 흰색 린넨 셔츠가 눈에 띈다. 방금 다려 입고 나왔지 싶을 만큼 주름 하나가 없다. 나도 이름을 말하고 택시에 올랐다. 

대뜸 한국사람이냐고 묻는다. 나를 초면에 한국사람으로 봤던 사람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파니니 사장님에 이어 로베르토까지...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한국을 잘 알까 싶다. 한국인인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전화 받으며 아시아 엑센트가 있어 동양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것 같았는데 보니까 알겠단다. 중국사람도 동포로 오해하는 외모를 시칠리아 사람이 구분한다고?^^ 이곳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가 이제 시칠리아 작은 도시에서도 알 만큼 유명한 나라가 된 건지... 예전에는 무조건, 예외 없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해 받았었다. 모르면 묻거나, 묻기 싫으면 동양인이라 하면 될 일에, 왜들 나름의 신념을 피력했던 건지... 아무튼 그들과 한통속으로 묶이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니 기분 좋다.


그의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mamma라며 실례하겠다며 전화를 받는다. 전화 상대를 밝히기 까지... 왠지 젠틀하다. 뭔가 약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더니 나이가 80 몇이신데, 아침에 드신 약을 또 드시겠다고 어디다 뒀다고 전화하신 거란다. 그래서 벌써 먹었다고 말했단다.^^ 아침에 드신 약을 오후 2시가 넘어 또 찾는 엄마를 타박하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 왠지 신선하다. 길가에 주차된 예쁜 옛날 차를 보고 열여덟 살 때 자기도 저런 old car를 몰았단다. 그래서 old car라 하면, 저 차가 싫어할 텐데, classic car로 불리길 바랄걸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그 말을 다 알아 듣는다. 어, 신기하다. 내 말을 이렇게 잘 알아 듣다니... 말 자체를 알아듣는 것뿐만아니라 맥락을 이해한다. 농담이라는...

영어를 잘한다. 영어에 이탈리아 엑센트가 거의 없다. 내 영어를 과연 알아 들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말해도 됐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 사람 3명 중 한 명이다. 발음도 좋고 문법도 정확한, 배운 영어다. 어디서 얻은 번호인지는 모르겠지만, 번호가 있어 혹시나 하고 전화했는데, 연락이 돼서 너무 좋았다고 하니, 인터넷이겠지 하며 명함을 건넨다. 그러며 “You will see how clean my last name is.”한다. 그의 말이 정확히 귀에 꽂혔는데 이름이 깨끗하다는 게 무슨 말이지 싶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곧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roberto sapone...  사포네는 비누... 비누 씨였다.^^ 

내 한국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내 이름은 한 번에 알아듣는 우리나라 사람도 거의 없을 만큼 발음이 쉽지 않다. 이탈리아어에서 쓰지 않는 글자와 발음이 몇 개나 있어, 어려울 거라고 했더니, 그래도 말해보란다. 알려주니 몇 번 발음을 해보려고 하다, 그냥 안나라고 하자고 하고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조금 이해한다고 이탈리아어로 대답하니, 그럼 연습해야 한다며 신나게 이탈리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들은 말을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해도, 얼추 알아는 듣겠다는 것이다.

가는 길에 언덕에 제멋대로 생긴 오래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 보인다. 아름답지 않으냐고 감탄이다. 여기 사는 데, 매일 볼 텐데, 그래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게 신기했다. 이곳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마음을 다치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 동화 같은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을 처음 보는 나야 너무 좋고, 좋은 마음을 1도 못 숨기는 나도 덩달아 감탄을 계속하니 조금 더 가면 전망이 진짜 좋은 곳이 나오니 그 곳을 보여주겠단다. 그럼 잠시 멈춰도 되냐고 하니, 내려서 경치도 보고 사진도 찍으란다. 이런 좋은 사람 같으니라고... 감동적이다. 자신은 저 풍경이 보이는 언덕 어딘가에서 산단다. molto fortunato... 운이 좋다고 말해줬다. 인사치레가 아니고 진심이었다. 그리고 하마터면 집 구경 시켜달라고 할 뻔했다. 이런 풍경이 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사는 느낌은 어떨까 진짜 궁금했고, 그러면 어떤 사람으로 살게 될까도 궁금했다.



[로베르토가 보여준 피아짜 아르메리나. 성당 돔 왼쪽 아래 포르티코가 보이는 건물이 예수회 수도원. 현재는 도서관.]

전망대에서 풍경도 설명해주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풍경 속에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예수회 수도원이라며 예수회를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예수회는 안다고, 예수회 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눈빛이 흔들렸다. 순간 수녀님인가 했나 보다. 어딜 봐서.^^ 그냥 학교를 다닌 것이라고 하니, 긴장을 풀며, 아, 그래서 똑똑하구나, 예수회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하더라 한다. 그래서 그건 모르겠다고 하니, 내 이탈리아어가 자기 한국어 보다 훨씬 나은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아마도’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 forse라 하면 되나 했더니, 확실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 맞는다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고 영어와 서툰 이탈리아어를 섞어가며 말하고 있는데, 내가 나랑 대화하나 싶을 정도로 내 말과 말의 의도를 잘 알아듣는다. 내 영혼의 짝이 시칠리아에서 운전하고 있었어??? ^^

여기도 성당이 마을 끝 제일 높은 곳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당을 보고 내려오며 다른 곳을 보면 되겠다 싶어 성당 앞에 내려줄 수 있냐고 물으니, 당연하지 라고 하며 거기 가면 친구가 있는데 소개시켜 주겠단다. 예전에 뭔가 큰 일을 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성당 앞에서 지팡이를 판단다. 아침 먹은 바를 지나가길래, 저기서 아침 먹었어 하니까, 네 숙소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바로지 한다. 모르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 마을에 오는 사람들이 빌라 로마나 볼 생각밖에 없었다는 것을 아는지 묻지도 않은 갈 곳과 볼 것을 알려주며 설명을 해준다. 고향을 아끼고 자부심이 있다. 자신의 identity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왠지 위엄이 느껴진다. 저녁 7시 무렵 어떤 거리에 있는 바에서 친구들과 함께 아페리티보를 하고 있을 것이니 심심하면 놀러 오란다. 그래서 친구들이 좋아할까 하며 완곡히 거절의 뜻을 전했더니, 그 말의 맥락은 못 짚었는지,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걱정하지 말란다.^^

성당 앞에 내렸다. 지팡이를 판다는 친구는 많이 연로하신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나쁠 수는 없다. 뭘 판다기 보다는 그냥 사람구경하며 세월을 낚으러 나오시는 것 같았다. 로베르토는 할아버지와 반갑게 포옹하며 인사하고 나를 소개시켜 줬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무화과를 내밀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마당에서 따왔는지 크기가 제 각각이다. 하나 먹어보니 너무 달고 맛있다. 우리나라 햇볕으로는 만들 수 없는 단 맛. 이게 무화과 맛이지... 나는 무화과를 원래 껍질 잘 안 벗기고 그냥 먹는다. 그래서 그냥 먹은 것인데, 할아버지가 그게 아니다 싶으셨는지 큰 것으로 골라 떨리는 손으로 껍질을 까서 건네 주신다. 역시 맛있다. 그리고 역시 떨리는 손으로 손에 묻은 것 닦으라 휴지를 주시며 먹고 남은 찌꺼기 놓으라고 손바닥을 내미신다. 너무 다정하시다. 그래서 로베르또에게 그냥 먹으면 안되냐고 물으니, 그냥 먹어도 되는데 사람들이 보통 까서 먹는단다. 사소한 대답에도 배려가 뚝뚝 묻어있다. 그럼 난 그냥 먹겠다며 두 개를 더 먹었다.

성당을 보러 갔다. 그런데 누구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열려 있다던 성당 문이 닫혀있다. 다른 곳 먼저 보러 가는 길에 보니 로베르토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할아버지랑 수다삼매경이다. 미술관 보고, 다른 교회도 보고 다시 성당 보러 왔는데 여전히 로베르토는 성당 벤치에 앉아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손을 흔드니 크게 손을 들어 흔들어 준다. 왠지 동네 친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성당을 보고 나왔는데, 여전히 거기 있다. 거기에서 바로 친구들을 만나러 갈 생각인가 보다. 아무리 영혼이 통하는 친구라도 하루치 인사를 초과했다 싶어 다시 안 만나도록 성당 뒷길로 내려왔다. 물론 로베르토와 친구들의 아페리티보 모임에도 가지 않았지만, 동네에 그런 친구 있으면 삶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싶었다.

P.S. 로베르토roberto sapone의 번호(+39 329 291 1435)는 론리 플래닛에 나온 번호였다. 피아짜 아르메리나에서 이 번호로 택시를 부르면 영어를 무지 잘하고, 고향을 아끼고, 자기 일을 즐기고, 세상 젠틀한 로베르또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