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2008
산티아고 가는 길: 48: 마지막 날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마지막 순례자 미사...
준비하지 않았던 마지막 기도에서 내게 가장 큰 상처였던 두 존재에 대한 내 마음이 편안해지길, 그리고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하게 됐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숙제가 조용히 정체를 밝혀온 거다. ^^
미사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핑크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저씨와 오는 내내 싸웠다는 고해성사를 바디랭귀지로 했는데, 신부님이 다 알아 듣더란다. 아주머니는 싸다고 오렌지를 자루째 사서 남편의 배낭에 넣곤 했었다. 그런 아주머니가 귀엽기는 한데, 자신이 져야 할 짐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아저씨가 애처롭기도 했었다. 어떻든 건강하게 잘 마친 게 고맙고 반가워,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찐하게 허그해 드렸다.
마침 코골이 쌍고동 아저씨들이 지나간다. 볼 때마다 그저 손만 흔들고 웃으며 지나쳤었는데, 유명한 남한 girls라며 Y와 날 너무 반가워하며 포옹을 한다. 기억하고 싶다며 사진도 찍자고... 그럼요... 핑크 아주머니, 누군데 그리 찐하게 포옹을 하느냐 하신다. 오늘 처음 이야기하는 아저씨들이에요... ^^
말로만 듣던 M을 만남. 몇몇 사람이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 그럼 M을 아느냐고 물어서 알게 된 인물이다.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밤... 떠나는 것이 아쉬워 또 광장에 갔는데, 그곳에 가면 언제나 같은 마음의 순례자들이 있다. 아델레 아주머니와 브렌다를 만나 수다고 떨며 즐겁게 앉아있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M이 사라졌다. M은 Y와 같이 머물기로 했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M이 사라지니 Y가 숙소로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Y를 홀로 남겨두고 나만 먼저 갈 수도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광장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없다. 혹시나 말없이 숙소로 돌아갔을까 하고 숙소에 가보니 숙소에도 없다. 도깨비야 뭐야... 내 마지막 밤 저녁 기분을 이렇게 망칠 수 있는 거야? 너 뭐니? 싶었다. 내 기분도 기분이지만 잘 곳이 없어진 Y. 내 방에 침대가 두 개니, 주인에게 이야기 하면 설마 못 자게야 하겠느냐 하며 같이 가자고 내 호텔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골목에서 오리에타와 남편을 딱 만났다. 그들은 Viloria de Rioja의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부부.
왠 일이니, 카미노 어땠어, 허그, 뽀뽀 난리난리...
널 여기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틀간 휴식하기로 했어, 그런데 너 파울로 코엘료 좋아한다고 했지? 어... 그가 여기 왔어, 내일 San Lazaro라는 곳에서 북사인회가 있어. 내일 거기로 와. 아, 그래... 내일 바르셀로나로 떠나... 그래, 안됐다 할 수 없지.. 그래 잘 가...
사실 난 그의 팬이 아니라서, 그가 지금 지척에 있다는 사실 보다는 오리에타 부부를 만난 것을 신기해하며 호텔로 가고 있었다. 이미 M 때문에 나빠졌던 기분은 기억도 안 나고... 그런데 오리에타가 막 달려오더니 팔짱을 끼고 같이 가자고 한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며 무슨 일이냐 물으니, 지금 그가 광장에서 널 기다려 한다.
정말, 진짜, 진짜...??? 그녀의 남편, 진짜야, 이게 카미노야 를 반복한다.
오브라도이로 광장 파라도르 앞. 입구 앞에 불빛이 환하다. 전등 불빛 때문이 아니라 조명 때문에 환한 것이었다. 단단하고 넉넉한 배가 고급스러운 재킷 덕분인지 흉해 보이지 않는 그가 정말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악수를 청한다. 정말 내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아저씨들과 수백 번의 허그와 키스를 해온 마당에 그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악수하며 Can I hug you?라고 물으니, Oh, yes please라고 말한다. 하하... 그 사이 우리를 둘러싼 스태프들의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는 듯한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조명이 너무 밝아 주변의 실루엣만 보일 뿐 사태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 그가 Y와 나를 내일 북사인회에 guest로 초청하라고 스태프에게 지시를 한다. 이런 이런... 역시 내일 떠난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고... 이미 오늘 일만으로도 지역 신문 어딘가에는 얼굴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내일 못 가는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싶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credential에 사인을 받고...
산티아고에서는 더욱 거물일 수 밖에 없는 그, 이미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도 로비 쯤에서 취재진들과 함께 있다가, 오리에타의 전화를 받고 잠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그의 주의는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가서 그에게는 인사할 틈도 없어 손만 흔들고, 오리에타 부부와 인사를 하고 광장을 가로질러 오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좋아하냐고 물어서 예의상 좋아한다고 대답했을 뿐, 그가 아무리 거물이어도, 내게는 거물이 아니어서, 그를 만나는 게 신기하기는 해도 오리에타를 만난 일이 더 좋았지 그를 만난 건 그렇게 흥분되고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 밤 기분을 망친 M 때문에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신기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늦게까지 광장에 있지도 않았고, 당연히 오리에타를 만나지 못했고, 이런 일은 없었다.
오리에타 남편(이름을 잊었다)이 계속 했던 말... This is the Camino... 가 귓가에 울린다.
여행이 끝나면, 순간이동처럼 다른 환경 속에서의 삶에 파묻히며 얼마 지나지 않은 여행일지라도 꿈처럼 느껴진다. 카미노가 그걸 염려한 게 아닐까 싶다. 잊을까 봐, 돌아가자마자 길을 걸을 때 어린 애처럼 행복해 했던 나를 잊을까 봐, 걷기를 멈추자마자 모든 걸 잊고 이전의 나로 돌아갈까 봐... 귓가에 커다란 징 소리와 함께 이게 까미노야, 까미노를 잊지마 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