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2008

산티아고 가는 길: 41: Lavacolla까지



비. 하루 종일 drizzling.
30.22km. 가장 많이 걸은 기록... 다행히 날씨가 걷기에는 좋아서...

아침 바에서 윌 부부가 날씨를 탓한다. 좋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아무래도 wrong place(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것 같다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윌은 햇빛을 좋아하고 즐긴다. 윌에게 다 내 탓이라고, 내가 해가 있는 날보다 이런 날씨가 걷기에 좋다고 해서 그런 거라고 했더니, 네가 기도해서 그런 거야? 그럼 달리 기도 좀 해봐 하고 웃는다. 윌을 만나면 늘 기분이 좋다.

3일째 만났던 한국 아저씨 둘을 38일만에 다시 만났다. 잠을 잘 못 자서 수면제를 먹었고, 오래 먹다 보니 위에 탈이 났고, 계속 먹다 보니 이젠 수면제가 안 듣고, 아무튼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나를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저씨들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도 예민하지 않았고, 무난히 카미노 생활을 한 것 같다.

산티아고를 하루 남겨두고, 모두 조금씩 흥분되어 있는 것 같고, 그동안의 카미노 생활을 돌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카미노 다음을 계획하는 것 같기도 한다. 마리는 남편이 차로 데리러 올 것이라고 하고, 세르지도 유끼꼬도 피터도 모두들 삼삼오오 들떠 소회를 나눈다.

저녁을 늦게 먹으면 잠을 잘 못 잔다. 그래서 일찍 먹고 들어와 프랑스 친구들이 예약해준 호스탈 독방에 있다 보니, 세상이 고요하다. 그런데 뭔가 특별한 감상이 없다. 이곳은 산티아고에 입성하기 전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깨끗이 씻는 곳이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이다. 샤워는 했으니 빨래나 하자 하며, 빨 수 있는 것을 다 꺼내 빨았다. 빠는 것보다 말리는 게 더 문제인데, 말릴 대책도 없이... 그런데, 난방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레디에이터에 널어 놓으니 흐뭇하다. 그런데 산티아고 입성 전날 밤을 이렇게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보내도 되는 건지... 어쩌랴, 내 마음이 이런 걸...

그런데 잠시 실수로 난방을 한 건지, 아니면 누가 덥다고 컴플레인을 했는지, 더는 난방이 되지 않는다. 에고... 계속 나왔으면 빨래가 바싹 말랐을 텐데...

씻고 빠는 것으로 모자라 먹어 치우기 까지...

산티아고 까지 9km... 두어 시간이면 가는 거리...

다리가 또다시 코끼리가 됐다. 이번에는 레온에서 보다 훨씬 심하게... 옛날에 병원에 다니던 수준으로... 조금 무리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30km 이틀 걸었다고 이럴 수가... 피니스테레에 가려면 무조건 30km 이상씩 걸어야 하는데, 이래서 갈 수 있을까... 갑자기 허리도 좀 아파서 오전에 걱정이 되기도 했었고. 비 때문에 물도 못 마셨고, 빨래하고 밥 먹고, 인터넷 한다고 제대로 쉬어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 걱정이다, 걱정...

밥 먹을 때 동무가 되어준 세르지 아저씨... 딸 둘에 손자가 넷인 할아버지란 말에 깜짝 놀랐다. 중년 아저씨인가 했었는데... 세르지는 여느 프랑스 사람과는 좀 다르다. 농담도 수다도 좋아하고, 다정이 병이다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