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2008

산티아고 가는 길: 43: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다리 부종이 더 심해졌다. 어제 밤에 세르지와 친구들을 따라나가 노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피니스테레까지 걷겠다는 마음은 접기로...

7시 반에 Y를 만나기로 했다. 어제 미사 끝나고 Y에 대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Y가 왔고, 아침을 같이 먹었다. 그녀는 오늘 피니스테레를 향해 떠나는데, 떠나기 전에 산티아고로 보냈던 짐을 찾아 어딘가에 맡겨야 한단다. 모른 척 할 수 없어 따라 나섰다. 그녀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새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저렴한 숙소를 발견했고,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돈을 내고 정해버렸다. 돌아서서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일...

호텔로 돌아와 씻고 짐을 챙겨 새 펜션으로 옮겨놓고 나왔는데 지도를 두고 왔다. 다시 올라가 지도를 가지고 내려왔는데, 낯익은 사람이 배낭을 매고 맞은 편에서 오고 있다.

그를 보고 있으니, 그도 계속 나를 본다. Were you in the train to Saint Jean with me? 라고 말하려 했었는데, 말의 끝을 맺기 전에, 그가 맞지, 너지? 그런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아서... 라고 하며 hug...

처음 만났던 순례자 친구였기에 종종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났었고, 나는 그가 벌써 순례를 마치고 길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는 사이 나도 그도 서로의 이름을 잊어버렸고... 다시 이름 교환하고 소식을 물었다. 나는 네가 벌써 길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그랬더니 다른 곳을 들리기도 했고 많은 일이 있었다고, long story한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그날 산티아고에 오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어... 라고 하며 눈시울이 붉어져 말을 맺지 못한다. 괜찮아 하고 하며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모든 좋은 것을 바라 하고 돌아섰다. 그러고 몇 걸음을 걸었는데 그가 금방 가르쳐준 내 이름을 부른다. 돌아보니 내게 걸어와서 카미노에서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너도 그 중의 하나야 하고 말한다. 엉엉... 고마워, 행운을 빌어 하고 하며 헤어져 아무 골목으로 들어가 하릴없이 쇼윈도우를 들어다 보는데, 자꾸 눈물이 핑핑 돈다.

바욘 발 생장 행 기차 안에서 만났던 퀘베커 Luke. 객실에 그랑 나랑 단 둘 밖에 없어서 인사도 하고 수다 조금 떨고 순례자 사무실까지 같이 간 게 우리 인연의 전부... 그리고 40여일 후에 산티아고에서 만난 것. 오늘 만나서 엄청 신기한 인연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에게 stranger라는 사실이 변한 건 아니다... 그런데, 마냥 cool해 보이는 (north) american guy가 마음을 다 드러내며 울먹였다. 이 길이 아니면 낯선 사람 앞에서 마음을 다 내놓고 눈물을 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작은 인연들조차 선물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그의 처음과 끝을 맞아줬다. 그때도 내가 먼저 타고 있는데 그가 왔고, 오늘도 산티아고에 입성해서 성당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 그를 내가 맞은 것처럼 돼버렸으니... ^^ 이런 우연이 확률로 계산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괜시리 덩달아 눈시울을 붉히며 골목을 돌아다니다 엽서를 사러 서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belgian guy를 만났는데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망설이는 눈치다. 못되게 군 적은 없어도 그의 시선을 못 본 척 외면해왔는데, 그런 마음은 말 없이 전해지는 거라 그도 내가 거리를 지키고 싶어 했던 마음을 알고 있었구나 싶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를 안아주었다.

엽서를 꼬맹이 조카들에게 썼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느낌을 알려달라 했던 Ursula에게도 썼고, 그동안 고마웠던 카미노 친구들에게도 썼다. 독일로 돌아간 Ursula에게는 부쳐주고, 다른 친구들에게는 인연이 있어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 주려고... 물론 Luke에게도...

성당에 가면 Luke를 만날까 하고 갔는데, 그는 보지 못하고 제인과 브라이언을 만나 오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아타푸에르카에서 만나 여기까지 같이 왔으니 카미노 친구로는 오랜 친구가 맞긴 하다.

한 번만 만나도 되는 에레코는 대여섯 번을 만났는데, 그래서 결국 점심도 같이 먹게 됐는데, 그는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에레코가 자기가 찾아주겠다고 한다. 착한 녀석... 이러니 네가 길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는 말이 나오니 안 나오니... 그렇게 쓴 엽서를 전했더니, 돌아서서 엽서를 읽었는지 다시 달려와 big hug를 해주던 녀석... 그를 찾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어떤 힘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그가 나를 찾길 바란다고...

셋째 날 만났던 스위스 아저씨를 만났고, 오리에따 집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아저씨도 만나고, 한국 친구도, 한국 아저씨들도 만나고... 기대하지 않던 모든 사람을 만나는데,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발견한 버거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수잔나가 들어온다. 같이 밥을 먹다, 생장 행 기차 안에서 만났던 사람을 오늘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자신은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사람을 만났단다. 그런데 그가 기차에서 만났던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더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아느냐 물어보니 Luke... 그야말로 소름이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연치고는 너무 드라마틱하다. 수잔나 말에 의하면 그가 오늘 7시 차로 Finisterre로 떠났단다. Cee까지 버스로 가고 Cee에서부터는 걸을 생각이라고 했단다.

Eve도 만났고, 그만 빼고는 다 본 느낌...

오늘 만났던 한국 청년... 부르고스에서 이곳까지 버스로 왔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베드 버그에 몹시 심하게 물렸고, 샤워실에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괜한 오해를 했고, 자신을 기피하는 것도 모자라 신고까지 하더란다. 이후 몇 알베르게에서도 비슷한 설움을 당했고, 구하던 답을 찾은 것 같아 산티아고 들려 돌아 가려고 산티아고로 오게 됐단다. 시선이 두려워 알베르게에는 못 가겠고 저렴한 호텔을 구하는데, 스페인어를 못하니 힘이 든다고... 그 정도 스페인어는 할 것 같아 같이 구해보자 했는데, 몇 군데 전전하기는 했어도 다행히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내게는 축복 같은 이 길이 청년에게는 상처로 남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