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2008
산티아고 가는 길: 45: Finisterre에서
어제 바바라와 내일 아침에 이메일 주소 교환하자 하고 헤어졌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일당 중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밤을 보내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아침을 먹으러 나온다는 게 무리지... 그래도 만나자 했었는데 그냥 들어갈 수 없어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 그런데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나는 코너의 이쪽 편에 있었고, 그녀는 같은 코너의 반대 편에 있었던 것이다.
바바라와 엇갈리고 바에 앉아있다 클라우스를 만났다. 성당에서 피니스테레에서 슬픔과 아픔을 모두 내려놓았다 한다. 좋은 사람이다. 만나서 기쁘다.
해변을 배회하다 로렌조와 안드레아를 만났다. 그동안 만나서 온갖 수다를 떨면서도 이름을 모르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이 할아버지들 너무 귀엽다. 나를 보더니, 아침에 오늘은 해변에서 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짠 하고 나타났단다. ㅎㅎㅎ 너라면 이탈리아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이탈리아 좋으면 이탈리아로 오라고 하는 할아버지들... 그런데 언제나 이야기는 로렌조 할아버지가 주도한다. 로렌조 할아버지가 안드레아 할아버지 말을 너무 타박해서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안돼 보일 때도 있다.
오늘 이곳에 도착하는 Y를 만나러 알베르게에 갔다가 걸어서 여기까지 온 윌 부부를 만났다. 결승점을 통과한 마라톤 선수 격려하듯 그들을 맞아줄 수 있어서 기뻤다. Y도 곧 도착하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윌이 Y를 도와주라고 부른다. 가보니 오스피탈레로가 Y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하고 싶었던 거다. 들어보니 그것 모른다고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닌데, 저렇게 까지 호들갑을 떨며 사람을 당황스럽게 할 일인가 싶은 내용이다. 그녀가 어떤 카미노를 했을지 새삼 뭉클...
이름만 듣다 만난 이보나. 이 길의 모든 사람은 이보나 바라기인 듯, everybody says Ivona... 만나 보니 누구에게나 스스럼 없이 다가가고 밝고 건강한 처녀다. 그녀가 묶는 펜션에서 그녀의 생일 파티를 겸해 밥을 해먹기로 했다. 너무 과잉보호인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길을 걷기로 했단다. 아빠, 저 이제 서른인데, 좀 자라도 될까요 라고 말하고 싶단다. 하지만 그녀는 충분히 자유로워 보인다.
클라우스 말처럼 카미노에서는 누구도 somebody지 nobody가 아니다. 각자 걷지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만난 적 없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들어 알게 되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새 내 평판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고... 안보이면 안부를 궁금해하고, 무사하다는 안부를 확인하면 좋아하고, 뭔가 안 좋을 때는 슬쩍 손을 내밀어 오는 사람이 있고... 카미노 마을 어디를 가더라도 이웃, 즉 길동무가 있고... 800km의 긴 community. 치유의 길이라고도 하고 성찰의 길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이 길이 재미있다. 세상에 이런 곳은 여기 밖에 없을 것 같다.
크로아티아에서 온 이보나 파티. 미국인 티건, 크리스티나, 독일인 크리스티나, 영국인 조나단, 남아프리카에서 온 그란트, Y와 나... 이보나는 리조토를 만들고, 난 파스타, 티건은 샐러드를 준비... 이보나가 생일이라며 오라해서 거절할 수 없어 간 거였는데, 역시 파티는 내 체질이 아니다. Y와 sunset을 핑계로 먼저 일어나 나와 등대로 향했다. 구름이 너무 짙어 어제와 같은 시간인데 그냥 칠흑 같은 밤이다. 일몰도 월출도 없다. Y는 이곳을 볼 시간이 오늘 밖에 없는데, 왠지 내가 안타깝다. 그리고 그녀가 수녀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원장 수녀님께 불려가서 몇 백만 원이 든 봉투를 받았고, 수녀원을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단다. 어떤 신부님이 이곳에 가보라 해서 수녀원 나오며 받은 돈으로 오게 된 것이라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도, 묻지도 않았고, 설사 시시콜콜 들었더라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런데 마음이 엄청 복잡해졌다.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 모르겠고, whole truth는 알 길이 없지만, 10년 넘게 수도생활을 하던 사람을 내치며, 알파벳도 잘 못 쓰는 사람에게 혼자 이 길을 걸으라 하다니... 지금도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르며 어이가 없다. 한국 신부님 주변에 유난히 따르고 떠받드는 여신도들이 있는 것... 나도 익히 보고 듣고 한 사실이다. 그런데 카미노에서까지... 몇 번 한국 신부님과 그를 추종하는 여신도 무리가 눈에 띄었는데, 좋아 보이지 않아 못 본 척했었다. 그런데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건장한 한국 신부님은 광장에 두 다리를 뻗고 거의 눕다시피 대성당을 바라보며 앉아있었고, 주변에 여신도 서넛이 몸종처럼 신부님의 어깨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경악...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는 느낌... 모든 사람을 축복했지만, 심지어 곱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모두 진심으로 축복했지만, 그들은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 물론 쌍방 과실이라고 본다. 하지만 어떤 연로하고 쇠약한 순례자도 그 광장에서 그런 자세로 누군가에게 안마를 하게하지 않는다. 어쩌다 극단적으로 좋지 않은 예를 연속해서 본 것뿐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