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2008
산티아고 가는 길: 36: Fonfría까지
딕을 따라 잡으려면 30km는 가야 한다고, 30km를 가겠다던 기세는 산 하나, 언덕 하나 오르고 완전 꺾여, Fonfría 알베르게 등록. 그러고는 뜨거운 물 잘 나오고 맘 편히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샤워시설에 완전 흐뭇해하고 있다.
잘 걷게 됐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산악지대로 접어드니, 다시 본색이 드러난다. 이삼 일 안에 딕을 만나겠다던 생각은 무거운 다리와 함께 그냥 생각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 같다.
O’Cebreiro를 지나며 갈리시아에 들어섰다. 갈리시아에서 켈트 문화를 느낄수 있을 것이라더니, 느낌이 다르다. 신령스러운 느낌이 있다고 할까... 숲의 정령들이 떠다니는 것 같고... 지붕까지 돌로 덮인 성당, 갈대로 초가처럼 엮은 지붕들... 예쁘다. 지나쳐 오는 마을들도 어찌나 예쁜지. 그냥 거리위주로 머무는 마을을 정하겠다 했지만, 마음을 홀딱 빼앗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발은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마음은 아쉽기만 하다. 머물렀던 마을은 볼 것 하나, 갈 곳 하나 없더니, 지나쳐야 하는 마을은 어쩌자고 이렇게 예쁜 건지... 깊은 산 중에 폭 파묻혀 있던 Herrerías, Faba... 경사에 지어진 포플러 숲을 마주하고 있는 집을 지나며 하루 종일 저런 숲을 마주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했지만, 정작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너무 예쁘다.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빼앗는 무엇이 있다.
산을 올라야 했지만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음. 한걸음 한걸음 가다 보면 결국 끝이 있다며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걸어야 했을 정도로 힘에 겨웠음.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경치는 얼마나 좋은지.
카미노에서 제일 무서울 것 같았던 개를 만남. 역시 예상대로 제일 무서웠음. 죽은 쥐, 도마뱀, 심지어 내장을 다 뜯어 먹힌 채 누워있는 사슴도 봤고 모두 무서웠지만, 역시 제일 무서웠던 것은 날 제 먹이를 가진 무엇, 또는 전리품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개가 제일 무서웠음. 그런데 더욱 어이가 없었던 건 개에 잡혀 5분을 꼼짝 못하고 있는 중에 지나가는 커플. 인간이라고는 그들 밖에 없었는데, 그 놈의 개가 내게 집중하고 있는 덕분에 지들은 여유 있게 지나가며, 도와달라는 내 말을 듣고도 들은 척 만 척 지나쳤다. 심지어 남자 놈은 나를 보고 싱글거렸다. 천하의 나쁜 것들. 악마니 천사니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 존재들이지만, 저런 것들이 악마지 싶다. 멀쩡한 겉모습으로 정체를 숨기며 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