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008

산티아고 가는 길: 34: Villafranca del Bierzo까지



8시까지는 나가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 했는데 늦어졌다. 문 밖을 나서니 비가 주룩주룩... 다시 들어가 비 행장을 차리고 나서니 9시 반.

인사 없이 휙 앞질러 가는 인간을 만나는 게 카미노에서 겪는, 매우 사소한 하지만 매번 불쾌한 일이다. 그러는 사람이 많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비가 와서 기분도 꿀꿀한데 왠 영감(?)이 인사도 없이 날 지나치려 한다. 용서하고 싶지 않다. 최근 터득한 빨리 걷기로 걸으니 그를 세 걸음쯤 앞서 걸을 수 있다. 그것도 힘도 안들이고, 계속...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동안 인사해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안면 근육이 약간 불독처럼 발달한 독일 아저씨. 망고를 먹고 있는데 지나간다.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으로 뭐든 혼자 먹을 수는 없는 일이라, 먹을래? 했더니 선뜻 먹겠단다. 그러고 걸으며 스스럼이 좀 사라졌는지 내게 뭐라뭐라 하는데, 듣든지 말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의 말투다. 와인 이야기, 구름 이야기 등등...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경계가 모호한데 뭐... 나도 듣는 둥 마는 둥... 그런데 비가 그치니 우비를 들고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면 또 내 오지랖이 발동하지... 내가 도와줄게요 하니, 할 줄 아니? 한다. 모르지만 한 번 해보죠 하고 배낭에 고정시켜 주니, 스페인어로 매우 고마워 한다. 내가 아저씨들한테 배운 스페인어가 얼마인데, 그 정도쯤이야 대처가 되지.^^ 나도 천만에 라고 스페인어로 대답해주었다. 그랬더니 완전 감동했나 보다. 환한 미소를 보여주질 않나, 나를 알츠하이머 환자로 만드는 장난을 걸지 않나... 비옷 한 번 배낭에 매달아 줬다고??? 그러더니 오늘 같이 걸어 즐거웠다며 인사까지 꾸벅 하고 간다. 실마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 못하지 않나?

오늘도 호텔... 파라도르. 내가 이곳에 묵는 첫 번째 순례자라고 하며, 순례자 특별 가격을 주겠다고... 매우 기쁜 듯 영광이라고 대답했지만, 몸 상태로 봐서 편히 쉬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 한 선택이지만, 순례자로 혼자만 럭셔리를 누리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 언제 생긴 연대의식? ^^ 이제 산티아고까지는 무조건 알베르게만 이용하겠다고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 맹세를 한다.

음식이 지난 번 파라도르만큼 fancy하진 않아도 맛있다. 그럼 menu del día에 비할 수는 없지...

이곳은 산속에 폭 파묻혀있는 유서 깊은 도시다. 스페인의 크고 유명한 도시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어느새 별로 볼 것 없다던 스페인 북쪽 작은 마을들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다. 구석기 신석기는 아니라도 무슨 석기 시대를 살고 있는 듯, 바닥이며 건물이며 온통 돌이다. 카미노가 아니면 언제 이런 마을에서 현지 사람마냥 곳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마을을 배회할 수 있을까... 광장 노천 카페 테이블들이 순례자로 가득하다. 한 친구를 발견해서 손을 흔드니 그 친구 말고도 여기저기서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저들이 다 나를 아는 거였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