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020

시칠리아 여행: 32: 팔레르모: 출발, 공항으로...



[팔레르모. 루지에로 세티모 광장piazza ruggiero settimo. 공항 버스 정류장. 프라다 매장 앞]


아침 먹고 배낭 메고 호스트와 인사를 나누고 폴리테아마 극장으로 향했다. 그곳 광장piazza ruggiero settimo 모서리에 공항 버스 정류장이 있다. 내가 1등으로 이곳에 도착했는데 순식간에 사람들이 한 바닥 모여들고 줄이 생기고 있다. 그 동안 줄이 별 소용없다는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줄에 합류했다. 순서로 따지면 내가 1번이어야 하는데 한참 뒤로 밀렸다. 카타니아에서 어리바리하다 밀려 버스를 못 탔던 적이 있고 이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표지판에 표 파는 곳이 써있기는 한데 어딘지도 모르겠고 매표소 찾아 배낭 메고 돌아다니기도 싫다. 배낭 메고 몇 걸음을 걷기가 싫다니... 벌써 여행자 모드에서 벗어난 것임? 버스 기사에게 사면 되겠지 뭐 하고 서있는데 앞 사람이 표를 들고 있다.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 저 소년ragazzo에게 샀다고 길 건너편을 가리킨다. 웬만하면 소년ragazzo, 소녀ragazza로 부른다. 나도 40대까지는 ragazza로 불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두 시뇨라나 마담이라 부르더라.^^ 아무튼... 길 건너편에 두 청년이 있다. 담배 피는 청년이 맞느냐 물으니, 그렇단다. 줄을 버리고 길을 건너 표를 사러 가야 하나 갈등하며 그 청년을 보고 있으니, 청년이 이쪽으로 건너 온다. 눈빛으로도 많은 것이 오간다. ^^ 휴대용 기기에 전대 하나. 단출해 보이는데 필요한 건 다 갖췄다. 버스회사 로고가 있는 셔츠도 입고... 백주대낮에 그 정도면 무허가 암표상은 아닌 듯. 시칠리아에서 교통카드 같은 것은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아직 없는 것 같다. 홈페이지를 보면 다 투명 경영을 선언하는 페이지가 있을 정도로 투명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너무 투명해야 하는 교통카드 같은 것은 왠지 절대 좋아할 것 같지 않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매표소며 정류장을 유지하는 것 같고, 이런 혼란스러운 시스템은 당분간 이대로 있을 것 같다.

버스가 왔다. 역시 줄이고 뭐고 없다. 짐 빨리 싣고 타는 게 이기는 게임이다. 줄을 서기는 섰어도 예상됐던 상황이라 짐칸이 열리자마자 재빨리 짐을 싣고 탔다. 그럼, 내가 시칠리아에서 탄 버스가 몇 대인데...^^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 있다,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한다는... 늦게 왔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줄 맨 앞으로 가서 뻔뻔히 서있던 여자가 거슬렸었는데, 저 뒤로 밀려났다. 주로 압도적 남초 집단에서 살아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다움을 과신 또는 과시하며 룰을 무시하고 황당하게 행동하는 여자들이 종종 있었는데, 왠지 저 여자도 왠지 그런 부류로 보인다.

버스 안. 앞 쪽에 미국인 무리가 있다. 목청껏 떠든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말하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가르치는 예의범절인가? 이탈리아 호랑이들이 없는 굴에서 미국 여우들이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창 밖 어떤 차의 운전 스타일에 대해서... 너나 잘해 라고 말하고 싶다. 너 맨해튼에서 운전 안 해봤지? 라고도 물어보고 싶다. 미국 사람들은 뭐든 자기네 방식이 표준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피트에 마일에 파운드도 못 버리면서... 마가를 외치는 어떤 인간 탓에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남의 나라에서 저러는 건 아니다 싶다. 공항행 버스를 탔으니 저들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일 텐데, 저들에게는 무엇을 느낀 여행이었을지 문득 궁금하다.

어떤 소리든 일정 데시빌을 넘어가면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뒷사람들이 불어로 소근소근 이야기하고 있다. 불어 발음이 로맨틱하다나 어떻다나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소리 반 공기 반의 발성이 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작으니 거슬리지 않는다. 존중과 배려... 인간 세상에 벽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벽을 허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길은 오늘도 바다를 보여준다. 역시 오른쪽으로...^^ 물색도 너무 예쁘고 수평선 위에 피어 올라있는 구름도 너무 예쁘다. 해변에 사람들이 있다. 아침부터 해수욕이다. 직각으로 뚝 떨어지는 절벽이 있는 산도 있다. 팔레르모도 한 면만 바다고 나머지는 산으로 에워싸여 있는, 해안가에 형성된 배산임수의 도시다. 하늘에 구름이 짙어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날씨가 8월까지 좋다가 9월에 잠시 안 좋고 10월에 돌아온다더니 그 말이 맞는지 타오르미나에서 비를 잠깐 만난 이후로는 비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P.S. Falcone e Borsellino 공항행 버스


[팔레르모. 공항 버스 정류장과 시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