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020

시칠리아 여행: 32: 팔레르모: 아침...



건너편 방 손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통화를 즐기며 내 잠을 깨웠다. 오늘로 끝이니 사정이 있겠거니 봐주기로 한다.

아파트 문을 열면 병조림 뚜껑 열 때처럼 톡 소리가 날 것 같다. 한 달 내내 갇혀 있던 공기가 터져 나오며... 일단 들어가서 보안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길. 몇 해 전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공동 현관 입구에서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나서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집 비밀번호를 생각해 봤더니 다행히 기억이 난다. 여행할 때는 그다지 힘든 줄 몰랐는데 다녀와서 3박4일쯤 그야말로 난생처음 비몽사몽을 겪고 좀 놀랐었다. 여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이번 여행은 내 페이스 대로 다녀서 그때보다는 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건넛방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도 이야기 하기 싫었던 이유는 조폭스러운 외모도 있지만 목소리로 인한 선입견이 컸던 것 같다. 지금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갑자기 고함을 지른다. 왠지 자꾸 러시아 사람 같다. 호스트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이탈리아 사람은 아니고 영어도 잘 못한다. 저자는 늘 저렇게 목청껏 이야기하는 걸까? 저런 류의 사람과 동료나 친구가 되어 본 적? 아마도 없지 싶다. 여행이 아니면 저런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관찰할 일이 없었겠지... 여행의 재미라고 해두자...




식당에 나와 아침 먹기 전, 의례처럼 창밖 풍경을 찍는다. 오늘도 화면 가득 마씨모 극장이 담긴다. 거대한 덩치가 주변을 모두 밀어내는 느낌인데 그래도 예쁘다. 정이 들었나 보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안녕, 마씨모. 안녕, 팔레르모...

아침을 먹고 있으니 그 남자가 아침을 먹으러 나온다. 이곳은 진짜 오리지널 B&B다, 사는 집 빈 방을 내어주는... 객실이 2개 밖에 없다. 그와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 말을 나누기는 싫은데 그 거친 말이 어느 나라 말인지도 궁금했고 누군가 제 말을 듣고 있다는 걸 알면 좀 매너를 지키지 않을까 싶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캐나다란다. 어디서 거짓말을... 이라는 말이 튀어 나올 뻔... 캐나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니, 온타리오에서 왔단다. 온타리오는 토론토가 있는 주이고, 왠지 소도시 출신은 아닐 것 같은데 도시를 말하지 않고 주를 말하는 것이 수상하다. 그럼 너는 프랑스어를 쓰니 라고 물으니, 황당하다는 듯한 어조로 캐나다에서 프랑스어 쓰는 사람 거의 없다 하는데 말이 길고 중언부언한다. 그걸 누가 모르니? 캐나다에서도 영어를 쓰는 온타리오 주 출신이라며 영어를 너무 못하니까 묻는 거잖아 라고 말하고 싶다. 

진실을 말하기 어려우면, 내가 도와주마... 새벽 통화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새벽마다 전화하는 소리가 잘(clearly) 들리는데 영어는 아니더라 했더니, 그제서야 멋쩍어하며 러시아어라고, 러시아 출신이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identity는 러시아지 캐나다가 아니다. 그런데 왜 캐나다를 앞세우는 걸까?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마주칠 사람 (거의) 없는 B&B에 홀로 머무는, 러시아인이라는 정체를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조폭의 분위기가 줄줄 흐르는, 아침마다 누군가에게 명령하고 호통치며 전화 통화를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화소리를 녹음해서 구글 번역기로 돌려볼 걸,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아쉽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현장을 경험 또는 목격한 것일 수도 있는데...^^